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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해가 넘어가려 하니 어머니 생각이 났다

요세비123 2025. 2. 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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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2남 4녀를 키우시면서도 혼자서 대식구를 먹여 살리는 온갖 일을 다하셨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밭농사는 물론이고 부엌살림은 언제나 어머니 몫이었다. 전기밥솥은 물론 인덕션과 가스레인지도 없고 수돗물도 없고 마실 물을 동이로 길어와야 했고 나무로 불을 때서 삼시 세끼를 만들어 내야 했다.

빨래도 해야 하고 전기가 없으니 다리미도 없고 빨래방망이로 모시적삼과 삼베옷을 두드리기도 하셨다. 한량인 아버지가 얼마나 도우셨는지는 어린 나로서는 당연히 몰랐지만 얼마 전 큰 누님이 그때는 어머니를 도울 생각을 왜 못했는지 모르겠다고 이제야 아버지가 후회스러운 심정을 비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이미 돌아가신 지가 15년이 되었지만 아직 그 인자하신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 번도 우리한테 큰 소리를 치시지도 않고 언제나 소곤소곤 말씀하시던 그 모습이 갑자기 시골 외딴집 굴뚝에서 저녁밥 하는 연기가 나는 것처럼 떠올랐다.

나무를 때어야만 밥을 할 수 있었던 그때 가마솥으로 어떻게 물조절 불조절을 그렇게 기가 막히게 하셨을까? 누룽지가 누릇누릇하게 익어 간식거리로는 그만한 게 없었고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면 어디서 다시 그런 맛을 찾을 수 있으랴.

젊으셨을 때도 겨울에 농한기가 되면 친정에 며칠간은 휴가 아닌 휴가를 가셨는데 어린 내 손을 잡고 가시면 계시는 내내 잠만 주무셨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어린 나는 그저 사촌들과 놀기에 바빠서 어머니가 힘드셨는지 주무셨는지를 알지 못했다.

좀 더 나이가 드셨을 때도 딸네 집에 오시면 겨우내내 쉬고 싶어 하시고 어떤 때는 본가에 가고 싶어 하시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시면 바짝 마르고 검던 얼굴에 화색이 돌고 뽀얗게 되셨던 기억이 난다.

강냉이에 콩을 넣고 설탕으로 단맛을 내고 물을 부어 푹 삶으면 죽도 밥도 아니지만 달콤한 그 맛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겨울 방학 때 집에 가면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음식을 간식으로 많이 먹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이 지나 먹고살만할 때가 되니 어머니는 젊은 시절 밭농사에 집안일에 골병이 드시지 않았으면 이상할 정도로 팔다리가 아프시고 결국엔 뇌경색으로 수술하고 다시 일어나시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추운 겨울 시골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상상을 하면 이렇게 먼저 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가운데 나무가 있는 곳이 옛집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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