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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쁨도 함께 해야 하고 슬픔도 함께 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요세비123 2025. 1. 1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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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의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

2007년 4월 17일 미국 버지니아주 센터빌에 있는 버지니아공대에서 한국계 영주권자인 조승희(당시 23세, 영문학과 4학년)가 두 자루의 권총을 난사하여 30여 명을 사살한 뒤 자살한 사상 최악의 총격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한국사회는 범인이 한국인이라는데 놀라서 전국민이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경악하였다. 당시 미국을 방문하였던 외교부장관이 미 당국자에게  유감을 표명하며 위로하였더니 오히려 총기사건이 일어나게 된 미국문화가 문제이지 개인 조승희가 한국계라는 것 때문에 한국정부가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국사회는 집단으로 기뻐하고 집단으로 슬퍼하며 집단으로 우울해 한다. 그 집단의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배신자가 되고 이단아 취급을 한다.

나의 정치적, 사회적 감정을 왜 집단에 귀속시켜야 하며 함께 하지 않는다고 떼로 몰려와 손가락질을 하고 비난에 비판을 가하는지 모를 일이다.

가수 임영웅이 윤석열의 계엄선포에 비판을 하지 않고 강아지 생일 축하 사진을 올렸다고 개념 없는 연예인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윤통과 김 국방, 그리고 이상민 내무가 충암고등학교를 나왔다고 까마득한 후배들이 무슨 관계가 있으며 무슨 이득을 보았다고 교장선생을 국회에 불러다가 야단치고 학생들이 교복을 못입고 다녀야 하는지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가?

육사를 나온 못난 선배들이 계엄에 휘말려 구치소에 잡혀 갔다고 국군의 간성을 길러내는 육사를 폐교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면 이 나라의 국토방위는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연좌제가 없어진지 오래건만 여전히 연좌의 맥락에서 사고하는 수준이다.

성숙한 사회는 개인의 사적인 취향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집단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왜 많은지에 대해서 다양한 연구도 있고 다양한 주장도 있겠지만 그러한 경향성이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성숙한 시민사회의 단계에 오르지 못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미국 영주권자는 국적상으로는 미국인이 아닌 타국인이지만 영주권을 취득하였다는 것을 볼 때 상당기간 미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국적이 문제가 아니라 살고 있는 사회가 잉태한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다.

미국인들이 그 당시 조승희의 총격난사 사건을 한국인이 문제라고 보지 않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조승희와 같은 한국인이라서 부끄럽다는 집단적인 감정을 보였다.

이번 계엄사태에서도 대통령 윤석열이라는 개인의 판단이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한국 사회 전체가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고 저런 수준의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서 내린 결정과 조치가 우스꽝스럽게 된 것이지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나‘라는 개인은 흔들리는 정치와 흔들리는 경제 상황에 영향을 받기는 하겠지만 내가 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할 일이 아닌가?

지난 이야기지만 무안공항 여객기 사고에 일개 한강 유람선 회사가 폭죽을 취소하지 않고 쏘았다고 서울시로부터 6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정황상 부득이한 이유를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공무원들의 책임회피의 전형이다. 폭죽으로 인해 조의분위기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까 봐 온전히 그 책임을 민간회사에 돌려준 것이다.

이번 계엄과 탄핵을 기점으로 우리도 좀 성숙한 국가와 성숙한 사회의 일원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면 좋겠다. 집단적으로 뭉쳐지는 획일성을 극복하고 각자의 판단과 취향을 찾아가는 지성과 이성을 좀 더 키우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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