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방송 이태리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가는 곳마다 맛있는 이태리 음식을 맛보느라 순례의 의미를 제대로 챙기고 왔는지 아니면 음식만 기억하고 왔는지 모르겠다.
이태리 음식은 파스타에 피자, 리조또까지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내가 알고 있었던 음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특별한 조미료를 쓰지도 않고 소금과 올리브유를 사용해 건강한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 김치와 된장이 생각나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10박 11일 기간 중 한국음식 단 1끼, 중국음식 단 1끼를 제외하고 점심과 저녁은 매번 디저트까지 포함되는 3~4개의 코스 요리를 접했다. 아침은 호텔 뷔페였지만 대부분 좋았다.
좋은 재료와 단순하면서도 감칠맛이 있는 지역마다의 이태리 음식은 건강하고 부담이 가지 않았으며 우리 음식이 복잡하고 자극성이 강한데 반해 가끔 좀 짜다는 음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드럽게 다가왔다.
고속도로변의 휴게소는 화장실 이용을 위해 자주 들렸는데 쿠키와 초콜릿은 물론 아기자기하고 눈길을 끄는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점심을 먹는데 1,500ml짜리 대형 와인이 등장했다. 낮술은 우리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태리에서는 낮에 마시는 와인은 술이 아니라 당연히 따라오는 음료에 불과한 것인지 모르겠다.
피렌체에서 먹은 스테이크는 Medium rare로 구워야만 고기가 질기지 않다며 익숙하지 않으면 편하게 먹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엄청난 크기의 T-bone 스테이크라 인원수 대로 세트메뉴를 주문하니 남기도 많이 남았다.
마르게리타 피자와 버섯피자는 입에서 살살 녹았다. 이태리에서는 피자는 원래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고 혼자 먹는 것이라는데 이 큰 피자를 먹고 또 메인 요리가 나오는데 돼지고기가 500g은 되어 보였다.
실은 그 전날 아씨시에 도착하여 호텔 식당에서 가지를 으깬 라자냐를 먹었는데 라자냐가 그렇게 고소하면서 맛있는지 몰랐다. 불행히도 사진을 찍지 않아서 증거물이 없는 게 아쉽네.
아드리아해 바로 위치한 중동부 동네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는 생선꼬치 외에 다른 음식에 대한 기억을 살리지 못하겠다.
여기에서 파는 빠네는 지름이 50cm 정도 되어 보였는데 하나를 사면 온 식구가 이틀은 먹을 양식이 될 법하다. 대식가 이태리 사람들 존경스럽다. 먹는 데는 진심이다.
황량한 산비탈의 산 죠반니 로톤도는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먹고살기 어려운 지역인데도 그 전날 먹었던 고기 경단의 맛이 기가 막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도 더 잘 찍어 놓고 음식의 이름과 재료도 좀 상세히 기록해 놨어야 하는데 순례에 목적을 두다 보니 아쉬움이 든다.
우리는 한국에서 이태리 음식을 먹으면 파스타나 피자가 메인 디쉬인 줄 알고 거기까지만 먹는데 이태리에서는 전채에 이어 가볍게 먹고 메인디쉬를 고기나 생선 종류로 먹는다.
카바텔라로 알았는데 어느 곳에서인가 사온 상품명을 보니 Foglie d'ulivo라고 쓰여 있다. 이렇게 많은 파스타 이름을 어찌 기억할 수 있으랴.
피에트렐치나는 아주 조그만 시골 동네인데 동네 식당의 음식은 기가 막히게 맛있다. 사장님 같은 분이 자기네가 내놓는 음식에 자부심이 철철 넘친다. 병아리콩이 들어 있는 야채수프는 정말 맛있었다.
Cassino에서 먹은 리조또는 여태까지 먹었던 리조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맛보지 않고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환상적인 리조또, 요리를 잘 모르는 아마추어의 한계다.
이태리 포강 유역에서 쌀을 생산하니 밀로 만든 빵이 주식이지만 쌀로 만든 리조또 요리도 중요한 이태리 음식의 하나다.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토리노를 거쳐 밀라노 아래를 지나 아드리아해로 들어가는 포 강 주변에 논이 있는가 보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수비아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식당의 페투치니는 더 이상 맛있을 수가 없었다. 로마로 왔을 때 바티칸에서 운영하는 숙소 식당의 페투치니는 토마토 베이스였는데 올리브 오일 베이스의 수비아코 페투치니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그분들이 이 글을 알지 못하니 좀 점수를 짜게 주어도 괜찮을 듯하다.
그래도 메인 디쉬는 제대로였다. 돼지고기를 갈아서 만든 함박스택 같은 고기도 맛있고 곁들인 완두콩 요리는 일품이었다. 페투치니로 승부를 가르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생선을 감싼 만두피 같은데 토막 낸 생선의 형태가 유지되고 만두피도 으스러지지 않게 요리를 했다. 워낙 야채가 풍부하고 재료가 좋아서 당근의 달콤함과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과일과 야채를 파는 가게는 어찌나 이쁘게 정돈을 해 놓았는지 보는 사람의 기분이 유쾌해진다. 푸짐하다 못해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가게다.
어디다 올릴까 했던 피렌체 가죽 제품 가게 사진을 마지막으로 올려본다. 그 가지런함과 그 색깔과 그 다양함이 사진 한 장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그냥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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