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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에서 화전민의 흔적을 보며..

요세비123 2026. 3. 15. 21:45

산행을 하다보면 숲속에 남겨진 돌담과 축대의 흔적이 인간이 머물렀던 곳이구나 하고 알려줍니다. 어떻게 이런 깊은 산중에까지 들어와 살았어야만 했던가 하는 삶의 고단함이 숲의 고요함 속에서 깊게 다가옵니다.

화전민(火田民)의 역사는 우리 땅의 가장 척박한 곳에서 피워낸 끈질긴 생명력의 기록이라 할 수 있지요.

그들의 발자취를 네 가지 주요 흐름으로 정리해 봅니다.

1. 화전의 시작과 형성 (고려~조선시대)
화전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본격적으로 화전민이 늘어난 것은 조선 후기부터입니다.
* 생존을 위한 선택: 가혹한 세금(삼정의 문란)과 탐관오리의 수탈을 피해 백성들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 자연발생적 정착: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간 산이었지만, 그곳에서 나무를 태워 생긴 재를 거름 삼아 메밀, 감자, 조 등을 심으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2. 일제강점기와 수난
일제강점기에는 화전민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 수탈의 결과: 토지조사사업으로 땅을 잃은 농민들이 최후의 보루로 산을 택했습니다.
* 일제의 탄압: 산림 자원을 수탈하려던 일제는 화전민을 '산림 파괴자'로 규정하고 강제로 이주시키거나 통제하려 했습니다.

3. 해방 후와 화전정리사업 (1960~70년대)
우리가 등산하며 마주치는 화전민 터의 대부분은 이 시기의 흔적입니다.
* 산림 녹화 사업: 정부는 황폐해진 산을 살리기 위해 '치산녹화'를 국정 과제로 삼았습니다.
* 화전정리법(1968년): 이 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에 흩어져 있던 화전민들을 산 아래 마을로 강제 이주시키거나 정착촌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때 비로소 수백 년간 이어온 화전 문화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4. 화전민이 남긴 흔적
산행 중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보신다면, 그것이 바로 그들의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 축대와 돌담: 집터나 밭의 경계를 세우기 위해 쌓았던 돌들.
* 너와집과 굴피집: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나무껍질이나 돌판으로 지은 집.
* 멧돼지 등 야생동물과의 사투: 산속 삶은 늘 위험과 맞닿아 있었기에 독특한 민속 신앙과 공동체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불을 놓아 땅을 일구고, 그 재가 식기도 전에 씨를 뿌려 생을 이어갔던 이들."

화전민은 단순히 숲을 태운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시대에 가장 정직하게 몸을 써서 살아남았던 우리네 이웃이었습니다. 다음에 산행하실 때 이끼 낀 돌담을 보신다면 그들의 고단했던 숨소리를 잠시나마 느껴보시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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